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길 위에서 만난 작은 세계들

by 인데일리001 2025. 6. 18.

여행이 그리웠다, 아주 많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여행을 했더라?”

사진첩을 뒤적이다 우연히 마주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곳엔 몇 해 전, 일본에서 혼자 걷던 어느 조용한 골목이 담겨 있었다.

고요하고 낯설고, 그래서 잊히지 않았던 그 풍경.
그 순간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뻐근해졌다. 꼭 마음속 어디에 먼지가 쌓인 것처럼.

그러고 보니 참 오랫동안 멀리 떠나본 적이 없었다.

여권에 도장이 찍힌 지도 한참 전의 일이고, 비행기 대신 지하철 타는 게 익숙해져 버린 일상.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다른 나라를 그리워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바쁘고, 시간은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그 나라의 공기를 닮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내가 기억하는 세계의 조각들, 작은 골목, 낯선 향기, 언어 하나 없이도 느껴지는 감정들을 따라.

비행기도, 여권도 없이 단지 낯선 감정을 찾아, 작은 세계들을 만나기 위한 나만의 짧은 여정을 시작했다.

길 위에서 만난 작은 세계들
길 위에서 만난 작은 세계들

1. 도쿄의 봄을 닮은 골목, 망원동 어느 날

“여긴 마치 도쿄 변두리 같다.” 처음 그 말을 들은 건, 봄비가 내리던 망원동 골목에서였다.
좁은 길 양옆으로 늘어선 무인 소품 가게들, 유리창에 서툴게 붙은 일본어 문구, 그리고 하얀 커튼 너머로 보이는 앳된 바리스타까지.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 분명한데도, 순간 나는 작은 일본의 동네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 오는 날의 망원동은 유난히 조용하다.

발 아래 고인 물웅덩이에 벚꽃잎이 흘러가고, 연분홍 우산을 쓴 사람들이 하나둘씩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ももカステラ"라는 이름이 적힌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복숭아 카스텔라와 말차 라떼를 시켰다.

일본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아기자기한 나무 테이블, 말없이 흐르는 피아노 선율, 그 모든 것이 말없이 '일본'을 불러냈다.

밖으로 나왔을 땐 비가 그쳤고, 골목은 더더욱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이 바닥에 부서지던 그 순간, 나는 낯선 어느 나라의 거리를 걷는 착각 속에서 사진을 몇 장 남겼다.
“한국 속 작은 도쿄라니, 꽤 괜찮은 착각이잖아.”

 

2. 한낮의 유럽, 파주 헤이리에서 와인 한 잔

다음날 나는 기차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헤이리 예술마을’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유럽에 닿아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건 빨간 지붕의 건물과 와인잔을 든 사람들이었다.

작은 골목 사이로 스페인풍 벽돌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아래로 흘러가는 재즈 음악에 맞춰 걷는 발걸음은 자연히 느려졌다.
길모퉁이의 서점에 들러 잠시 책장을 넘기다, 눈에 띈 문장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창밖을 바라보니, 햇살 아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여행자처럼 보이는 남자가 보였다.

어쩌면 그는 이곳을 파리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카페 안쪽 구석 자리에 앉아, 샹그리아를 한 잔 주문했다.
첫 모금을 입에 머금자, 바르셀로나의 여름이 스치듯 지나갔다.

한참 후에 카페를 나와 다시 골목을 걷다 보니, 이탈리아 골목 같은 포토 스팟이 보였고, 그 앞에서 셀카를 찍는 연인을 발견했다.

그들의 웃음소리마저 이국적이었다.
이곳에 와서 나라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장소보다도, 그곳이 주는 기분이 진짜 여행의 실체가 아닐까.

 

3. 해가 저문 후, 홍대에서 만난 동남아의 밤

서울로 돌아온 날, 나는 홍대입구역 근처의 뒷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찾았다.
간판은 네온사인으로 깜빡였고, 안에서는 베트남어 팝송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이곳이 진짜 여행의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르겠다.

식당 안은 마치 호치민이나 하노이의 뒷골목 식당 같았다.

커다란 선풍기, 무성한 초록 식물,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양철 양념통.
쌀국수를 후루룩 마시고 나오는 길, 나는 카페 하나를 더 들렀다.

‘하노이의 밤’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은 커피보다 공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천장이 낮고, 조명이 흐리며, 커튼 뒤편에 작은 라탄 테이블이 있었다.
마치 낮은 숨소리로 얘기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나는 진한 연유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꺼내 사진을 정리했고, 그 안에 담긴 낯선 나라의 색감들이 다시 나를 여행자로 만들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내 귓가에선 파리의 거리 음악과 하노이의 엔진 소리가 섞여 흘러나오는 듯했다.
여행은 어쩌면 장소가 아니라, 나만의 감각과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풍경인지도 모른다.

 

진짜 여행은 감정이 기억하는 것
이번 1박 2일은 멀리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지도, 여권을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여행했다.
도쿄의 조용한 거리, 파리의 햇살, 베트남의 향신료 냄새, 그리고 짧지만 선명했던 순간들.

우리는 가끔 너무 멀리 떠나야만 진짜 여행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작고 조용한 거리 하나, 커피 한 잔, 무심히 흘러나오는 음악 하나에도 그 나라의 공기가 스며들어 있다.
여행은 그걸 느끼는 감각이고, 감성이다.

이제 나는 카페 창밖에서 떨어지는 햇살만 봐도, 파리의 어느 오후를 떠올릴 수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정말 여행 같았어?”
나는 웃으며 말한다. “응, 내 마음은 정말 다른 나라에 있었어.”

 

그리고, 다음 여행을 꿈꾸다
이번 짧은 여정을 마친 뒤, 나에게 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예전처럼 ‘멀리 가야 진짜 여행’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젠 가까운 골목을 걸을 때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익숙했던 거리에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그 속에서 세계를 발견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달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 여행을 향한 갈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작고 따뜻한 경험이, 더 깊고 넓은 세계로 가고 싶은 마음을 살며시 다시 피워냈다.

나는 다음엔 정말로, 그때 그 사진 속의 일본 골목으로 다시 가보고 싶다.
비 오는 날 종이우산을 쓰고 걷던 그 거리,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북카페, 그리고 작고 다정했던 인사들.
그곳에서 다시, 내 마음이 기억하는 감정들을 실제로 마주하고 싶어졌다.

또 어쩌면, 이번에 느꼈던 낯선 나라의 향기를 따라 진짜 바르셀로나의 햇살 아래 서보게 될지도 모른다.
헤이리의 와인잔 너머로 상상하던 유럽의 어느 오후를, 그곳의 돌바닥을 밟으며 마주할 날도 언젠가 오겠지.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단지 작은 세계를 만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이건 어쩌면 아주 긴 여행의 서막이고,
내 마음이 다시 ‘길 위’로 나아가도록 도와준 조용하지만 강한 시작이었다.

다음엔, 진짜 세계로 향하는 작은 문을 열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문 너머의 풍경도 지금처럼 따뜻하고 다정하길.

 

당신도 오늘 작은 세계 하나, 마음에 담아보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행기가 아니라, 감정을 여행시키는 감성일지 모릅니다.
다음엔 또 어디서 어떤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요?